지리산 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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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희 댓글 0건 조회 1,092회 작성일09-11-23 17:36본문
2008년 6월에 다녀 온 여행기 입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간식을 먹으면서 재잘거리며 여행을 하는, 아주 귀한 기회를 가졌다. 이 순간만은 친구들과 나의 얼굴에 생긴 주름을 잊고 마치 20여 년 전의 학창 시절로 돌아 간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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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으로 보이는 지리산 계곡들, 목적지인 절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들은 벌써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계곡과 굽이굽이 능선들, 그리고 그 푸르른 나무들... 이 광경 하나로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 준비하고 바삐 나온 수고를 이미 보상 받았다.
제일 먼저 도착한 절은 실상사였다. 실상사의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 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전면에 있는 보광전과 양 옆의 탑을 바라보는 순간의 느낌은 ‘완벽한 정적’과 ‘평화’ 그것이었다. 다른 절들과는 달리 단청도 하지 않았고 크지도 않았지만 실상사의 보광전이 주는 느낌은 군림하지 않는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굽이굽이 굽은 지리산 능선으로 둘러 싸인 작은 평지 위에 지어진 보광전과 탑들, 완벽한 구도를 보는 느낌이었다. 일주문 앞에 있는 연꽃들을 재현한 분위기였다. 건물도 오래 되면 어떤 영혼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세월에 갈라졌지만 강건함을 간직하고 있는 기둥에 조용히 손을 대어 보았다.
약사전에는 철제여래좌상이 있었다. 거대한 철제여래좌상을 쳐다보면서 어디에 sprue를 꽂았을까?, casting하기 힘들었겠다는 직업 의식과 철제여래좌상을 만지면 지리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다는 가이드 선생님의 말씀에 좋은 것이 좋다는 투철한 아줌마 정신으로 손, 허리, 무릎까지 고루 만지고 나왔다.
과분한 한정식으로 차려 진 점심을 먹은 후 두 번째로 도착한 절은 화엄사였다. 화엄사의 분위기는 실상사와는 정반대였다. 실상사가 과거의 시간에 머무르고 있다면 화엄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꿈틀거리는 역동성이 느껴지는 절이었다. 한마디로 늘 망치 소리가 나는 절이었다. 절이라는 공간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끈임없이 진화하는 것이 좋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곳이었다. 어쩌다 방문하는 방문자에게 절은 과거의 유산을 완벽하게 보존하는 곳이기를 바라지만 그 곳에 머물러 사는 이들에게는 절은 치열한 삶의 터전일 터이다.
건물 자체가 국보라는 각황전에 들어섰다. 어쩐지 낯이 익다라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기억을 더듬으니 주로 ‘부처님 오신 날’에 TV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었다. 크기와 웅장함이 나를 압도한다. 높은 천정의 화려한 장식과 크고 엄숙한 부처님 모습은 없던 신심도 일어 나게 할 지경이었다. 거대한 공간이 주는 종교적 분위기가 바로 이것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건축물을 볼 때 기하학적인 패턴과 비율과 구도에 집착하는 나에게 각황전은 하루 종일 쳐다보고 싶은 대상이었다.
마지막에 방문한 절은 천은사였다.
절 앞의 저수지(천은제)가 보이는 곳에 세워진 수홍루의 모습은 무릉도원 그 자체였다. 근처의 풀밭에 쪼그리고 앉아 하루 종일 쳐다보아도 질리지 않을 그런 풍경이었다. 수홍루 밑의 둑을 쌓은 암석에 끼인 이끼조차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은사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유적은 일주문의 현판과 극락보전에 있는 아미타 후불탱화였다. 그동안 사찰여행을 다녔지만 후불탱화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이번 기회에 탱화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탱화에 그려진 여러 인물들 중에는 이마 한가운데 눈이 하나 더 있는 인물들도 있었다. 무슨 의미일까? 이른바 지혜의 눈일까? 언젠가는 알게 되는 날이 있겠지.... 질문을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천은사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실상사와 화엄사 중간이었다. 너무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너무 서둘러 나가려고 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번 여행지로 세 절을 선정한 분의 세심한 눈썰미가 느껴졌다.
항상 유적지나 절을 방문할 때 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점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과거에 이 곳을 방문했던 수많은 조상들과 오늘의 내가 느꼈던 평화와 고요함을 후손들도 길이길이 누리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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