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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칼럼

[월요시론/신순희]겨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치의신보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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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양희 댓글 0건 조회 2,278회 작성일08-12-0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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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희<본지 집필위원>


가을이 깊어가면서 기온이 떨어지고 공기 중의 물기가 점차 없어지면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이는 것보다 식물 몸속에 들어 있는 물이 밖으로 더 빨리 빠져나가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식물들은 물이 자기 몸에서 빠져나가는 통로인 잎을 낙엽을 만들어 자기 몸에서 떨구어냄으로써 물이 자기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게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식물들이 낙엽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일부분을 희생해 전체를 보존하려는 적극적인 자기보존 방법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


불황이 깊어가면서 주가가 떨어지고 대중의 구매력이 점차 없어지면 진료수입을 얻는 것보다 운영에 필요한 비용이 더 많이 지출되어 병원들이 잘 유지될 수 없게 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2007년 폐업한 치과의원의 수가 737곳이었다니 불황이 본격화된 올해와 내년에는 얼마나 더 많은 치과들이 낙엽처럼 떨구어져 나갈지, 남아 있는 치과들도 얼마나 누렇게 떠서 말라갈지, 다가오는 겨울이 문득 더 춥게만 느껴진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 붕괴와 민간 투자 위축으로 19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를 만큼 깊은 장기 불황을 겪었던 나라이다.
지난 주 대한여자치과의사회의 집행부 26명이 일본 치과계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일본의 치과계라면 ‘보철보험’, ‘호주머니 틀니’, ‘의사수입의 절반으로 떨어진 치과의사 수입’등 몇가지 우울한 정보가 먼저 떠오르는데, 독일식 사회보험을 모델로 1883년부터 실시된 일본의 질병보험이 1927년 건강보험으로 개편되면서부터 치과보철이 정액제로 급여화됐다고 한다. 우리보다 거의 100년은 앞선 보험의 경험, 10년 이상 앞선 장기 불황의 경험을 한 일본 치과계에서 2박 3일간의 짧은 방문 동안 따뜻하고 의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동경 의과치과대학의 구취클리닉을 소개해 주시던 여교수님이 한국어를 잘하셔서 욘사마의 팬이 아닐까 생각했고, 일본치과의사회관의 1층이 마치 호텔로비 같아 손님접대에 꼼꼼하고 배려깊던 일본치과의사들의 모습과 같은 느낌이었다.


일본 보험의 현황과 문제점을 강의해 주신 와타나베 선생은 한국의 보험제도에 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갖고 계셨는데 한국 현황에 관해 질문하셔서 답하느라 진땀이 났었고, 치과의사 출신 여성국회의원인 이시이 미도리 의원은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빴는데 그 왕성한 활동력의 원천이 ‘싱글’이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말에 대여치 집행진은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깊은 인상을 받은 건 개원가 방문 때였다. 도쿄에서 꽤 규모있는 교정전문병원이라고 들은 치과는 20평이 채 못되는 공간에 체어 두 대가 있었고, 근처의 소아치과는 소속된 의사 3명과 스탭 4명이 동시에 서 있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좁았다. 일본인들의 근검절약과 검소한 공간활용은 익히 들어온 터였지만 정말 꼭 필요한 것 이상의 그 어떤 허장성세도 없는 일본 치과들을 보며 10년간의 긴 불황을 겪어낸 일본 치과계의 저력을 느꼈고 겨울 나무의 교훈을 새삼 떠올리게 됐다.


이 가을, 창밖의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O.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거나 갓 볶은 커피향이 난다며 낙엽을 태우던 수필가를 기억하는 것은 습관같은 감수성의 자동반사이겠으나, 낙엽은 길고도 추운 겨울동안 살아남으려는 나무의 치열한 몸부림이고 그렇게 제살을 깎아 살아남은 나무만이 잎이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 이듬해 봄 피어날 새순을 잉태한다는 사실은 긴 겨울에 대처해야 할 우리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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