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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칼럼

잠수복과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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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은희 댓글 0건 조회 2,308회 작성일08-07-2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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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수복과 나비             

                                                                   (글: 윤은희)      

<잠수복과 나비>는 장 도미니크가 왼쪽 눈을 15개월 동안 20만번 깜박거려 쓴 책이다.

그는 1952년 파리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패션지 ‘엘르’의 편집장으로 잘나가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43세에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3주 만에 깨어났지만 전신마비 상태가 되어 단지 왼쪽 눈꺼풀만 깜빡일 수 있었다. 

그는 유일한 의사전달 수단인 왼쪽 눈꺼풀로 지난 인생을 회상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간다.  그는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다고 한다.  또한 병상에 누워서 쓰러지던 날 아침을 회상하며 정상인으로 눈을 떴으면서도 그것이 행복인지 모르던 날의 아침을 자책한다. 두 아이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보이고 더불어 그들이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는 잠수복에 갇힌 이후에야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왔는지 깨달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책이 나온 지 1주일 만에 그는 그동안 자신을 감금하고 있던 잠수복을 벗고 나비가 되어 자유로운 세상으로 날아갔다.


나 또한 정신없이 하루를 살며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축복받은 시간인지 모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가 내일 그처럼 몸은 완전 마비되나 의식은 정상적으로 유지되어 자신의 내부에 감금된  locked-in syndrome 상태가 된다면 어떨까? 오늘까지 내가 살아온 삶에 만족할까? 혹시 내 자신이나 가족, 내 주변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남기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의미 없던, 어제와 같던 오늘 하루가 다르게 느껴진다. 치과에 앉아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지는 않는지 생각해본다. 퇴근 후엔 어제처럼 TV앞에서 또 소중한 몇 시간을 낭비하고 오늘 하루를 마감할건 아닌지도 반성해본다.

오늘밤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며 내일도 오늘과 변함없는 하루가 펼쳐지리란 걸 의심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니 그런 믿음은 결코 지켜질 수 없다. 나의 끝을 내가 잠시 잊고 있을 뿐...

언젠가 끝날 나의 생명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끝을 생각하면 오늘 하루가 겸손해진다. 삶이 없으면 풍요도 없다 (There is no wealth but life)는 말이 있다. 풍요를 쫓아 욕심을 쫓아 소중한 인생을 낭비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이제 꼭 40년을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왔다. 앞으로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남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보수화되어 자신의 습관과 주장 속에 갇혀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스스로 자신을 잠수복 속에 가둬놓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이 순간 돌아본다.

기회가 된다면 그동안 소심함과 게으름에 갇혀 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나만의 생각 속에 갇혀 보수와 편견 속에 살지 않고 항상 나 자신을 새롭게 발전시키며 살 수 있었으면, 또한 내 가족을 사랑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고, 나비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1997년 3월 9일 세상을 떠난 장 도미니크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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