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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칼럼

[수필/최은숙]백두산 대장관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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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지숙 댓글 1건 조회 186회 작성일11-08-1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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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대장관 감상

  

엄마의 칠순 기념 가족여행으로 백두산을 다녀왔다. 어린 시절부터 마르고 닳도록 불렀던 애국가의 첫 소절에 나오는 그 곳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단군신화의 ‘태백산(太白山)’이 백두산이라는 한민족에 의해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되어 온 산. 백두대간(白頭大幹)의 근원인 산. 어쩌면 한번쯤은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은 아닐까. 뿌리를 찾아가고픈.


하지만 분단된 조국에서 남측과 북측이 합의했던 백두산 관광은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에, 우리는 중국에서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부르는 백두산을 다녀왔다. 중국을 통해 백두산 천지를 보는 방법은 현재 비교적 관광객이 많은 북파와 비교적 개발되지 않은 서파 길이 있다. 우리 가족은 이 두 길을 모두 가보기로 하였다.


서파관광을 위해 이도백하를 지나 송강하를 가는 길은 예사롭지 않았다. 한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의 안개가 자욱이 끼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현대 문명에 익숙한 나는 이 백두산 둘레 길을 가면서 교통사고 위험을 느꼈지만, 이제 와서 감상적으로 보자면 ‘고향의 전설’에서라면 귀신에 홀려서 사라질 만큼, 혹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 것 같은 심산유곡이었던 것이다. 다음 날 오전 소형차를 타고 차창으로 백두산의 수직적 식물분포와 자연환경의 변화를 파노라마식으로 보며, 해발 1670m 지점 서파 주차장에 이르렀다.
약 900m 1236계단을 올라가는 길에는 6월 초순이 지났지만 눈과 빙벽이 아직 남아있었다. 무척 추웠으나 맑아서 천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었다. 그런데 정상 무렵에 다가갈 무렵, 날씨가 흐려져서 걷는 속도를 빨리 하였다. 다행히 2470m의 정상 조중경계비(중조경계비) 옆에서 천지를 볼 수 있었다. 1964년 3월 발효된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에 천지의 54.5%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45.5%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하도록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아직은 푸르른 살얼음 상태의 조용한 천지를 볼 수 있었다. 내려올 때는 우박도 맞았다. 하산 길에 본 글귀 “등상장백산 일생평안 (登上長白山 一生平安)”은 하루가 일 년 같은 변덕스러운 날씨 변화를 겪은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듯, 묘한 여운을 남기는 표현이다.


북파 관광을 위해서 이도백하에서 머물렀다. 이도백하에서 본 미인송은 잊지 못할 장관이었다. 어젯밤 장대비 소리가 유난히 컸던 만큼, 이른 아침, 소형차에 몸을 실고 정상에 오를 때는 운무에 묻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상 휴식처에서 바람과 추위에 몸을 녹이며 천지가 열리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듯하였다. 그런데 가이드가 이 매서운 바람과 운무를 가르고 천지에 다가가자고 한다. 천지가 순간적으로 열렸다 닫히는 곳이므로 열리길 기다려서 보아야 할 것이라는 말을 반신반의 하면서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길을 가이드를 따라 갔다. 거기에는 이미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같이 운무가 걷히기 시작한다. 차가운 공포 분위기의 운무에서 갑자기 천지개벽하듯 천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불과 10여 분 만에 안개가 걷힌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와, 어제의 천지를 본 것 보다 더 큰 감동을 안겨다주는 순식간의 변화무쌍한 하늘을 본다. 맑아지는 청명한 하늘에 구름이 이쁘게 피어난다. 천지에는 밤사이에 눈이 왔었나보다. 어제보다 하얀 천지를 볼 수 있었다. 전형적인 고산 날씨를 보여주는 백두산, 그리고 볼 수 있을까 걱정했던 천지를 두 번씩이나 보는 행운을 누린 우리는 날씨가 하루에도 백두번 변해서 백두산이라는 우스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두산은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휴화산이다. 화산폭발 이후 바위와 재에 뒤덮힌 후 물이 흘러 침식 작용에 의해 형성된 금강대협곡(錦江大峽谷) 등은 자연의 웅대함을, 그리고 지금도 계속 진행되는 현재진행형의 자연의 섭리와 순환을 생각하게 한다. 따뜻한 햇살아래 지금 막 생동하여 기운이 넘쳐나는 백두산의 대장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중국인과 한국인이다. 상점에는 조선족 관광상품이 있다. 여기는 엄연한 중국인 것이다. 우리민족의 영산이 장백산으로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 사실이 가슴 아픈 현실인 것이다. 백두산은 만주벌판 역사 속에 묻혀있는 항일 운동하던 조상들의 아들딸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 국적은 중국인으로 살고 있는 현실, 그래서 아리랑이 중국의 국가 무형문화유산으로 보도되는 있는 현실을 새삼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조국 분단의 아픔과 함께 김광석이 불렀던 ‘광야에서’가사가 창밖을 스치운다.

  

최은숙
최은숙치과의원 원장


<출처:치의신보 제1956호-201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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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님의 댓글

김은숙 작성일

백두산에서 좋은 에너지를 받고 오시고 효도도 하셔서 즐거우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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