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와 결혼해서 법적으로 생긴 어머니 두 분이 계신다. 두 분은 살아오신 환경, 성격, 외모가 확연히 다르지만 솔직하고 긍정적인 면은 많이 닮으신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말년에 많이 아프셔서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시고 오랜 병고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지만 시어머니는 97세의 나이에 아직까지는 큰 병 없이 정정하게 살아계신다.
친정엄마에게는 호되게 혼이 나고도 마음 속 깊이 앙금이 남지 않았지만 결혼 초에 시어머니에게 들은 작은 꾸지람도 비수가 돼서 가슴에 박히곤 했다.
결혼하고 15년이 지난 지금 다소 거리는 좁혀졌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서먹함은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고 조심하라는 시어머니의 가르치심으로 여기며 존중해 드리고 있다.
나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는데 큰딸아이 백일에 시어머니께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셔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2년 후 아들을 출산하고 비로소 나를 가족으로 여겨주시며 살뜰히 아이들을 돌보시다가 허리까지 굽어지신 어머님을 보면서 아들 낳기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부부송년 모임에서의 일이다. 남자 쪽, 여자 쪽 테이블 음식을 다르게 주문하면서 여자 쪽 신선로가 많이 남았다. 남은 음식이 아깝고 덜어먹은 것이니 괜찮다며 일행 여자분이 남은 음식을 그릇에 담아서 남자 쪽 테이블로 건네주기에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어머니가 이 자리에 계셨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라고 말하며 시집살이 15년에 나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서는 항상 어머님 먼저 남편, 아이들, 나 이런 순서였으니까 말이다.
그 댁은 식구 중 남자라고는 남편밖에 없어서 평소 남은 음식을 자연스럽게 남편이 먹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괜찮다 싶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좀 아니었고 우리 아들 장가가서 이런 대접받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됐다.
우리 엄마나 시어머니는 질서와 예절을 몹시 존중하는 분들이셔서 웃어른 보면 깍듯이 인사하고 예절을 지키며 남편에게 잘하라고 하셨다.
아이들에게 아무리 가르치면 뭐하느냐 몸으로 보여줘라 하셨는데 왜 그러셨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남편한테 격의 없이 대할 때 많이 힘들어하신 이유도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많이 바꿔지지는 않겠지만 내 아들이 좀 더 대접받고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 남편한테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될 것 같다.
시어머니는 아이들 어릴 적에 같은 아파트 사는 이웃들에게 민망할 만큼 인사를 시키셔서 주민들을 당황하게 하셨지만 지금은 아파트 주민이 서로 인사하며 지내는 사이가 됐다.
또 아이들에게 항상 웃어른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가르치셔서 사춘기를 겪고 있는 큰 아이도 얼마 전까지는 아주 잘 배운 아이라고 칭찬받곤 했다.
아이들은 밥상 앞에서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드신 후 식사해야 된다고 배워서 할머니가 음식을 먼저 드셔야 식사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즈음 집안교육 잘못시켜서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가족이 있다. 처음 땅콩회항으로 시작된 사건은 집안교육을 잘못시켰다고 머리 숙인 아버지의 사죄에도 끝이 나지 않고 일파만파 문제들이 꼬리를 물더니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후광으로 만인위에 군림하던 대기업 부사장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도 모자라서 구속돼 굴욕의 시간을 보내게 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처럼 조심하고 겸손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아프다.
거리에서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를 보면 욕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이 아닌가 먼저 살피라고들 한다. 새삼스럽게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며 자연스럽게 예의를 지키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집안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시어머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 같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생각하며 내 위주로만 생각하고 살아가던 나에게 상하를 알려주시고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어머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옛 말에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있듯이 내 집안을 잘 돌보는 것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길 임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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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덴탈아리랑 2015.0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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