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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칼럼

[릴레이수필] 부족한 아들이 상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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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민 댓글 0건 조회 47회 작성일15-03-2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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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아들이 상 아들

Relay Essay 제2009번째

율동 공원을 산책 한지는 3년이 되었다. 가끔 만나는 父子가 있다. 어머니는 어찌 된 일인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아버지는 나이 50대 전 후로 그다지 눈에 띄는 인상은 아니다. 그저 키가 좀 크고 얼굴은 걱정스러운 듯 하면서도 행복한 것 같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그러나 왠지 눈초리만은 정감이 갔다. 여느 평범한 우리 아버지와 같은 갈색의 얼굴을 하고 있다. 걱정이 없을 수는 없다. 아들 때문이리라. 아들은 고등학교 갈 나이쯤 되었다. 그런데 왜 학교에 가 있을 시간에 공원에 나와 산책을 할까? 
아들은 여느 아들처럼 피부가 곱고 귀여운 얼굴이다. 아버지를 닮아 키도 크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반듯하지가 않다. 걷는 것도 비틀거린다. 말을 할 때면 얼굴 양쪽이 불균형하게 일그러진다. 손도 이상하게 구부러져 있다. 부자연스럽다. 아마 뇌성마비 초기 아니면 약간의 정신지체이리라. 아니면 자폐이거나. 가만히 있으면 너무나 귀엽다. 그러나 움직임을 보면 균형이 없는 것이 정상범주에서는 벗어난다.

내가 처음 그 부자를 보았을 때의 마음은 어떠했던가? 이런 아들을 가지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나? 절망했을 것이 틀림없다며 섣부른 판단을 하고 그 아이를 키우며 힘들 아버지의 걱정을 내가 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저 집은 저 아들 때문에 집안 망쳤다는 게 내 모자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계속 마주치게 되면서 나의 생각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점점 그 아이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면서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나에게도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넉살 좋게 말을 걸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는 항상 철따라 예쁜 운동복으로 깨끗하게 차려 입고 귀여운 배래모를 쓰고 운동화를 신고 걸어간다. 딱 그 옷을 입으면 공원에서 춥거나 덥지 않을 그런 알맞은 차림이다. 아빠는 아들의 속도에 전적으로 맞추어 걸어간다. 가끔 아들이 비틀거리면서 넘어지려고 하면 잡아 주면서. 

어제 만났을 때는 무슨 중요한 대화거리가 있었나 보다. 내가 뒤쪽을 걷고 있는데 잠시 길에 멈춰 서더니 아들이 배실 배실 웃으면서 아빠의 귀에다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아들의 미소는 귀엽고 다소 짓궂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몸과 마음이 성숙해 가는 사춘기 소년의 설레임이 배여 있는 예쁜 미소였다. 나는 그 귓속말이 너무 예뻐서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나는 나의 미소가 부담을 줄까봐 고개를 외면한 채로 지나쳤다. 그때 갑자기 내 뒤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후에 아빠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거 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네가 지연이를 쳐다보는 눈초리가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어!”
두 부자는 아예 팔짱을 낀 채 맑은 가을 하늘아래 함박웃음을 웃고 있었다. 아들은 계속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나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산책을 계속했다.

그 아이는 누군가 그 아이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만나서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겠지. 그리고 사람들이 하기 쉬운 것처럼 더 좋은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리지도 못하고 그 사람만 바라보며 평생을 살겠지. 만일 그 아이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자기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아버지와 남들은 알 수 없는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겠지. 그 아이는 결국 세상이 얼마나 치사한 곳인지 모르고 떠날 수도 있겠지. 그럼 때 묻지 않은 저 영혼은 천국으로 가겠지.

나는 이 아이가 아버지에게 주고 있는 행복을 바라보며 내 딸은 정상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나에게 저런 아들이 있었더라도 그 아들을 사랑하고 예뻐하면서 살지 않았을까, 진정 행복을 누리지 않았을까 하고 그제야 철 든 생각을 하며 부끄러워하는 것이었다.

서울 로고스 치과의원 원장
 
 
<출처:데일리덴탈 2015-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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