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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칼럼

[수필/김은희]정자문화와 가사문학 그리고 전통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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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지숙 댓글 0건 조회 55회 작성일13-05-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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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1832번째

정자문화와 가사문학 그리고 전통정원
 
제15차 대여치 담양 역사문화탐방
  
길가에 반가운 개나리가 피고 강가의 버드나무에 여린 초록의 잎이 올라오는 봄날에 전라남도 담양에 다녀왔다.

‘담양’하면 바로 ‘대나무’가 떠오르는 곳이지만 담양은 조선시대 가사문학과 함께 정자문화가 활발했던 곳이다. 잘 생긴 산들로 감싸진 비옥한 평야지대를 기반으로 한 유교 사회의 이상적인 지역이 될 수 있었던 담양은 이러한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유학자들은 관념적인 성리학을 탐구하고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기에 다른 어느 곳보다도 정자가 많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담양에서 제일 먼저 들린 곳은 죽록원이었다. 담양에 와서 대나무를 빼 놓고 갈 수는 없다.

죽록원은 2003년에 새로 조성한 대나무 숲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담양의 대나무’를 외웠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대나무의 향수를 충족시켜주는 곳이다.

오르고 내리는 언덕에 빽빽이 들어 찬 대나무 숲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소나무 숲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친구들과 전통 대나무 공예전수자의 작품도 구경하고 오랜만에 즐겁고 여유로운 산책을 하였다. 자연은 사람들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마력이 있는 듯 하였다.

담양에서 유명하다는 한정식과 떡갈비로 점심 식사를 한 후 소쇄원으로 향하였다.

소쇄원은 1540년대에 중종 때 선비인 양산보가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된 후 세상에 뜻을 버리고 낙향한 후 조성한 별림이다.

서양에 비해서 자연적인 모습을 중요시 하는 동양의 정원 중에서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제일 많이 간직하는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특징을 잘 간직한 소쇄원은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된 후 일반인들에게 유명해졌다.

산수는 단순한 물과 산이 아니라 자연의 도의 본질이 내재된 총체적인 자연의 상징이었고 지형적, 물질적 세계가 아니라 정신적 세계라고 생각했던 조선 선비들의 사상을 제일 잘 보여주는 정원이다.

막 봄의 문턱에 들어선 시기라 다소 황량하기는 했지만 1540년대에 완성된 이 정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한 그 후손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다음에 들린 곳은 식영정이다.

식영정은 조선 명종 15년(1560)에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세운 정자이며,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그늘에 처하여 그림자를 숨긴다”라는 뜻으로 임억령이 지었다.

조선시대 정자를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건물을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에’ 짓고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가 였단다. 식영정은 그 위치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었다.

물론 현대에 와서 식영정 앞에 인공호수인 광주호가 생겨서 풍광이 더 좋아지기는 했지만 이 앞에 강이 흘렀다는 옛 시절에도 좋은 위치였을 것이다.

담양에는 식영정 외에도 면앙정, 송강정, 환벽당 등 유명한 정자가 많이 있지만 시간 상 식영정에만 들렸다. 여유로운 경제력을 바탕으로 그 시절 선비들은 정자에 모여 학문을 논하고 시국을 논하면서 자신의 뜻을 펴칠 수 있는 시대를 기다리며 우리나라 가사문학을 꽃 피웠다.

식영정은 그 유명한 정철의 ‘성산별곡’의 산실이다. 식영정과 마주보고 있는 환벽당에서 정철이 어린 시절 공부를 하였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정철, 기대승, 고경명, 김인후 등이 한 시절을 같이 공부하고 세상을 논하던 공간이 담양의 정자인 것이다.

이런 담양의 정자문화는 조선후기를 거치면서 서원문화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서정적인 성산별곡이나 사미인곡과 같은 가사를 읊었던 풍류적인 선비들의 삶이 무오, 갑자, 기묘, 을사사화 같은 피비린내 나는 삶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 슬프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창평 삼지천 슬로우 시티이다. 이 미을은 아시아 최초로 지정된 슬로우 시티로 장흥 고씨가 많이 거주하는 마을이며 남쪽과 동쪽은 무등산 등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평야 지대로 예로부터 농사짓기 좋은 마을이다.

오래된 돌담과 잘 지은 고택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완전히 관광단지화 된 하회마을과는 달리 주민들이 거주하며 생업에 종사하는 마을이다.

비록 퇴락해 가는 고택도 있지만 대부분 잘 보존된 한옥은 옛 시절의 영화를 짐작하게 한다.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돌고 들린 찻집에서 여유롭게 마신 댓잎차, 황차, 매화차는 이 여행의  방점이었다. 꽃이 피는 이 시기에만 띄울 수 있는 매화가 동동 뜬 매화차라니….

추운 겨울을 보내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꽃 피우는 대화 속에 우리들의 봄날은 또 이렇게 지나갔다.

김은희
대여치 역사탐방동호회 강사
 
 
 
<출처:치의신보 제 2126호-20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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