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소리] 명사와의 만남 – 별에서 온 총장님, 가천대 이길여 총장-덴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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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희숙 댓글 0건 조회 111회 작성일24-12-20 11:5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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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소리] 명사와의 만남 – 별에서 온 총장님, 가천대 이길여 총장
- 기자명 이순임 논설위원
이순임 논설위원
최근 우연히 SNS에서 [90대 최강동안 총장님의 비결]이라는 짧은 영상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도 유명인이나 연예인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지라 평소 같으면 좀 심드렁했을 텐데, 영상에 나온 총장님의 모습은 92세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뱀파이어급 방부제 외모라 한동안 깊게 기억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여성리더연합이라는 모임에 속한 대한여성치과의사회의 일원으로, 그 영상 속 가천대 이길여 총장님을 만나 뵙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간혹 ‘시대의 어른’이라고 하면 시절이 시절이기도 하거니와, 틀니 소리 내며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꼰대를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기성세대에 막 진입한 우리는 후배나 젊은 세대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입은 다물고 지갑만 열면 된다’ 같은 자조 섞인 농담을 가끔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뜻 듣기에도 이루어놓은 업적이 대단한 분이시기에, (솔직히 이때만 해도 총장님의 최강 동안 외모가 제일 궁금했습니다만) 인생 선배로서 어떤 말씀을 해주실지 궁금하기도 하여 기대에 찬 발걸음으로 간담회가 열리는 가천대 컨벤션센터로 향했습니다.
이길여 총장님은 20대들이 모인 재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별에서 온 총장님’, ‘가천대 아이돌’이라 불리며 소위 아이돌급 인기를 누린다고 합니다. 가천학원 산하 신명여고 졸업식 영상에서는 여고생들이 총장님을 보고 연예인 만난 듯 환호하고, 제가 우연히 보았던 화제의 숏폼 유튜브 동영상은 조회수 210만 회를 넘어섰으며, 대학 축제에서 싸이 춤을 추는 총장님 댄스 영상은 조회수가 무려 370만 회를 넘습니다. 이런 정도면 연예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총장님이 간담회 장소로 입장하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저희도 모두 연예인을 만난 듯 환호하게 되었습니다.
이길여 총장님의 일대기를 담은 [소녀의 꿈] 영상 시청으로 시작된 간담회는 [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하라]라는 주제의 환영사로 이어졌습니다. 구글로 검색하면 1초 만에 방대한 자료를 검색할 수 있지만 여기서도 간단하게 총장님의 약력을 기술해보자면, 이길여 총장님은 인천의 개인 산부인과 의원으로 출발해 여성으로서 최초로 의료법인을 설립하고 의료 취약지역 병원운영과 개발도상국 심장병 어린이 무료 수술 등 국경을 넘나드는 봉사를 실천하였습니다. 교육과 인재 양성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으로 가천의과대학을 비롯한 여러 교육기관을 설립 인수하였으며, 경영난에 빠진 경원학원을 인수하여 2012년 가천대학교로 통합해 대학 운영과 글로벌 인재 양성에 헌신해 왔습니다.
▲ 이길여 총장에 관한 책들지금으로부터 92년 전(이라는 멘트를 하시는 순간, 일부에서 이미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전북 옥구군 대야면(현 군산시)에서 아버지 이동숙 선생과 어머니 차데레사 여사의 둘째 딸로 태어난 여사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편모슬하에서 자랐고, 일제 식민지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시절 누구나 그랬을 법하지만, 학창시절 동안 10리 혹은 20리 거리의 학교를 걸어서 혹은 기차를 타고 다니셨다고 합니다. (10리는 4km 정도의 거리입니다. 80대 중반의 제 부친도 어린 시절 10리를 걸어 학교에 다녔다는 이야기를 하셔서 자주 들어 익숙한 거리 환산이기도 합니다.)
총장님의 생애 첫 환자는 다친 강아지였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도 아픈 동물을 보면 집에 데려와 치료해 줄 정도로 타고 난 의료인이었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의무실에 근무하던 선생님의 하얀 가운을 보고 의사의 꿈을 키우게 되었고, 35세에 병으로 요절한 아버지를 두고 누군가 ‘일본에서 병이 났다면 쉽게 고쳤을 것’이라고 했던 일을 계기로 의사가 되자는 생각을 굳혔다고 합니다.
고3 때는 6.25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학교가 폐교되고 급기야 방공호 안에 들어가 입시 공부를 했다고. 이때 전쟁의 참상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잠시 해주셨는데, 직접 겪은 일들을 말씀하시는 것이라 그랬는지 듣는 모두의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그렇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대학은 전시 상황에 따라 전주·부산·서울로 옮겨 다녔다고 합니다. 의대 졸업 후에는 미국 유학 경비 마련을 위해 인천시 중구 용동에 산부인과를 개원했는데, 이때부터 ’가슴에 청진기를 품고 다니는 의사'로 유명해지셨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는 어디든 난방시설이 제대로 안 되어서 겨울이면 매우 추웠고, 차가운 청진기 금속이 몸에 닿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는 환자를 본 후 청진기를 가슴에 품어 체온으로 덥혀 진료했다고.
몇 년 전 별세하신 이어령 교수님은 한 강연에서 총장님을 이렇게 소개했다고 합니다. “중국에는 효심이 지극한 어린 황향이 아버지 이부자리를 몸으로 덥힌다는 고사가 있다. 일본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군의 발이 시리지 않도록 신발을 품고 다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한국에는 환자가 춥지 않도록 가슴에 청진기를 품고 지낸 의사가 있다. 타인 중에도 특히 약한 자, 환자를 배려하는 마음은 중국 일본의 고사에 비길 바가 아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학업을 마친 이후 병원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여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의료법인을 설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잠깐의 개인적인 망설임이 없을 수는 없었지만, 6·25전쟁 때 전장으로 나가 세상을 떠난 학우들에 대한 마음의 빚 그리고 조국에서 열악한 의료환경에 질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귀국을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의 미국과 한국은 조금 더 발전하고 아니고 정도의 차이이지만, 그 당시의 미국과 한국의 차이는 그야말로 다른 차원의 어떤 것이었을 텐데, 솔직히 제가 그 상황이라면 저는 미국에 남아 생활했을 거 같았습니다. 병원의 의료법인 전환 때도 어머님의 강한 반대가 있었지만, 총장님 특유의 뚝심으로 그대로 진행하셨다고 합니다.
간담회 내내 90세의 외모도 놀라웠지만, 메타버스·인공지능에 반도체 산업 흐름까지 파악하고 그 모든 사업을 20~30년 앞서 준비하는 점이 더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만남의 시간이 모두 끝난 후에 돌아보니, 총장님의 우주최강 동안 외모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 중에 특히 눈동자 반짝거리는 총명한 젊은 여성 후배들을 보면, 저들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발전을 이룰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고 하셨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근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영화 제목처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네 삶을 대할래? 라는 메시지를 던지시는 거 같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녁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테이블마다 돌아다니시며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었는데, 90대 동안의 비결을 묻자, 소식과 저염식, 운동과 스트레칭 그리고 비혼이라고 하셨습니다. 같이 참석한 동료 중에 40대 비혼자가 ‘진짜 결혼 안 해도 괜찮은 거죠?’라고 우스개 같은 질문을 드리니, 무릎을 탁!! 칠만큼 아주 명쾌한 답을 해주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답변을 지면에 적지는 않겠습니다만 혹여 궁금하신 비혼인이 계신다면 개인적으로 문의주십시오.)
오스카 와일드가 차디찬 감옥에서 써 내려간 뜨거운 삶의 고백록 <심연으로부터>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장담하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위선적인 말일 수 있지만,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전이지.'
절망적이고 열악했던 시대적 환경을 간절한 열망과 뜨거운 노력으로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가족과 이웃 그리고 나라에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을 실천해오신 이길여 총장님의 90여 년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만나 뵈어 듣고 보니, ‘이 시대의 진정한 큰 어른’의 뒷모습에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존경의 마음을 고개 숙여 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권태와 매너리즘에 빠졌던 그간의 제 삶에 대한 태도를 스스로 돌아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오스카의 말대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더 깊이 있고 밀도 있는 진중한 삶을 살자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선물로 나눠주신 회고록 [길을 묻다]는 아직 다 읽어 보지 못했지만, 지면에 새겨진 활자를 통해 마저 귀한 말씀 듣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후배들에게 진솔하고 감명 깊은 이야기를 해 주신 이길여 총장님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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